지난 2010년 10월 8일부터 30일까지 수원미술전시관에서 열린 ‹80시간의 세계일주›의 연장선 상에 있는 미디어 스크리닝 프로젝트이다. 7명의 주요작가가 참여하는 이번 전시를 통하여 과거 서구 시점의 세계이동경로를 탈피하고, 21세기 현 시점에 균형화된 시각으로 미디어 아트를 바라보고자 한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산업혁명으로 시작된 급속한 과학과 기술의 진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다가올 유토피아적 신세계의 낭만을 꿈꾸게 했다. 당시 쥘 베른은 과학적 사실주의와 낭만주의가 만나는 교차로에서 ‘경이의 여행’ 시리즈의 일환으로 ‹80일간의 세계일주Le Tour du Monde en Quatre-vingts Jours (1873)›를 발표한다. 산업시대의 산물인 증기선, 기차 그리고 열기구로 이어지는 이 세계여행은 과학의 근대화를 넘어 인간의 아이디어를 체계적으로 발전시킨 ‘테크니컬 픽션’으로 19세기 말을 상징하는 문학이라 할 수 있다. 허나 이 작품은 한편으로 세계를 장악한 서유럽인의 의식 속에 투영된 불균형한 세계관을 보여주는 대표적 소설이라 할 수 있는데, 일주국가들이 영국의 식민지로 일부 한정되어 있으며 ‘알려져 있는 세계와 알려지지 않은 세계’라는 이분법적 사고로 동방이 판타지에 불과하거나 비인간적이고 미개한 형상으로 그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80시간의 세계일주 2011›은 당시 서구의 왜곡된 시선을 비판하며, 세계 질서 안에서 ‘이국 취미’로 타자화되었던 국가들에 초점을 맞추려 한다. 이 주변국들은 본연 그대로 사회적, 문화적, 종교적인 충돌과 융합의 역사적 배경을 지니고 있다. 8명의 참여 작가들은 이러한 자신의 내외부적 환경들을 사유하고 있으며, 특히 소설 속 주체자였던 영국이 동등한 참여국으로 등장함으로써 프로젝트의 민주적인 시각을 유지하고자 한다. 이와 함께 전지구적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해진 21세기의 시대적 정황에 주목한다. 이전의 정보문화가 메시지 전달자가 중심에 있는 서구적 일 방향의 형태였다면, 21세기의 디지털문화는 그것을 주고받는 관계가 중요해지는 동북아적 상호교환의 성격을 띤다고 볼 수 있다. 디지털 미디어 아트는 발신과 수신이 동시에 작용하는 민주적인 종합 매체의 성격을 띠며, 통시성과 동시성을 함께 지니기에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허문다. 이러한 매체적 성격에 힘입어 우리는 8일 간, 혹은 80시간의 세계일주를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80시간의 세계일주 2011›은 이와 같이 보다 균형화된 시각과 상호교환적 디지털매체로 ‘오리엔탈리즘’ 혹은 ‘옥시덴탈리즘’이라는 우열법칙을 넘어서서, 다가올 글로컬 시대의 다원적 사회와 그 문화를 균등한 시각으로 연구할 수 있는 새로운 소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글: 대안공간 루프